8화
하얀색 빛은 제로의 눈을 비췄다.
“?!”
제로는, 반사적으로 손전등을 쳐내고 숨을 헐떡였다.
주변을 살펴보니, 흰 가운을 입은 여성이 서 있었다. 가운데 달린 명찰엔 ‘엘비나’가 적혀 있었다.
그 옆엔 미간을 찡그린 채 굉장히 무서운 얼굴로 제로를 쳐다보는 미미가 보였다.
걱정되어 쳐다본 것인데 오해할 수 있는 표정이었다. 미미 옆엔 세리아도 보였다.
“다들 있었네!”
제로가 한없이 밝은 웃음으로 말한 한마디에 머리가 으스러질 만큼 강한 손바닥 공격이 들어왔다.
세리아였다. 의사와 간호사는 그러다 죽겠다며 세리아를 저지했다.
“네가 진짜 죽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도대체 왜 그렇게 무리하는 거야!”
미미는 안절부절못했다. 제로는 미미와 세리아에게 상처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해맑게 웃으며 다행이라고 말했다.
세리아는 여전히 뾰로통해 있었다.
옆에 있던 의사 엘비나가 말했다.
“제로라고 했죠? 아벨이 데려오신 분 맞으시죠?”
“프리머와 친하세요?!”
엘비나가 햇살처럼 맑은 미소를 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에게선 은은한 약품 냄새가 풍겼다.
“맞군요. 아, 여기 옆에 있는 미미가 아니었으면 정말 죽을 뻔했어요.”
미미는 기분이 좋은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괜히 먼 곳을 바라봤다.
엘비나는 미미가 크로딥 안에서 쓰러진 제로와 세리아를 데리고 긴급하게 의료실로 찾아온 것을 추가로 덧붙였다.
옆에 있던 간호사는 초기 이볼이 발견되는 좌표일수록 위험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초기 이볼은 측정되지 않아 불안정하여 강함의 정도가 예측이 안 되어 특히 위험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런 이볼을 마주해서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안심시켰다.
“7시간 동안 기절해 있었어요. 세리아가 옆에서 간호하느라 고생 많이 했어요.”
세리아는 방금까지 뚫어지게 제로를 노려보더니, 새침하게 고개를 돌려 엘비나에게 예쁜 웃음을 지었다.
제로가 둘러보자 커다란 병실을 혼자 쓰고 있었다.
“그럼 이제 괜찮은 거죠?”
제로가 물었다.
“네, 하지만 언제 상처가 벌어질지 몰라서 반드시 조심하셔야 해요. 당분간 크로노 딥스엔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안 돼요. 저희는 1위가 목표예요.”
엘비나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아름다운 얼굴은 세리아와 동년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누구와 많이 닮았네.”
“아직 정신을 못 차려서 그래요!”
세리아가 제로에게 한참을 잔소리했다.
그러고는 크로딥에서 일어난 사건의 경위와 검은 양복에 대해서는 수사대에 정식으로 넘겨져 조사에 착수한다고 제로에게 알려줬다.
엘비나는 진찰해야 하는 환자들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일어나며 또 보자고 말하고 문을 열고 나왔다.
옆에 있는 간호사는 그녀에게 말했다.
“왜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어떤 걸?”
“제로라는 아이. 여기 왔을 때 내장이 다 뚫려 폐의 일부분이 없어졌잖아요. 이미 생존 가능성이 3%도 안 됐는데… 회복도 이상할 정도로 짧았어요. 더 잘 아시잖아요.”
"말해줄 사람은 따로 있어.”
그녀는 간호사에게 미소를 짓고, 서로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가며, 사라졌다.
제로와 일행들은 등록실에 도착했다. 꽤 많은 인파가 있었다.
세리아는 제로에게 의심의 눈초리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너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난 걱정 안 돼. 더 많은 TSR(팀 공명률)을 얻으면 나야 좋지!”
“응, 봐봐. 멀쩡하다고.”
제로는 팔을 벌리고 한 바퀴 돌았다.
오른쪽 손가락이 약간 검게 그을린 것 빼고는 눈에 보이는 상처는 없었다.
세리아는 흘깃 훑어보곤, 새침하게 말했다.
“크로딥에서 이볼을 잡았으니, 정식으로 신고를 해야 해. 나와 미미 같은 경우는 등록이 된 상태라 상관없지만, 넌 처음이라 등록을 해야 홀로그램으로 크로딥에서 있었던 기록들을 간편하게 신고가 가능해. 우리 차례가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제로와 일행들은 의자에 착석했다.
미미는 고양이를 발견하고,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멀리 선 한 무리가 제로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네가 제로야? 난 로드로트야. 앞으로 잘 부탁해.”
손을 내민 그는, 로드로트. 검은색 바가지 머리에 꽤 큰 장검을 등에 메고 있었다. 제로와 함께 G-EHO에 오른 키퍼 중 한 명이었다.
“응. 로드로트 잘 부탁해.”
제로는 그의 손을 잡고 서로 악수했다.
“오늘 등록하는 거야?”
“응. 너도?”
“아니 나는 누구를 만나고 오는 길이야. 아 벌써 시간이… 제로, 세리아 나중에 또 보자!”
등 뒤에 있던 큰 장검을 들썩이고, 자리에서 떠났다. 제로는 빠르게 로드로트의 프로파일을 열람했다.
- 로드로트
- 공명자 : 226
- 조율력 : 150
- RQ : 50
세리아와 미미보다는 조율력이 높았다. 시즌 초반이지만, 조율력과 RQ가 꽤 높은 편에 속했다.
곧이어 제로 차례가 돌아왔다. 안내 데스크는 여러 개의 칸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크로노 워치는 이쪽에 찍어 주시고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안내원의 말대로 크로노 워치를 앞에 있는 작은 기계에 찍자, 새로운 창들이 나타났다.
[AI 비서 '버드' 레벨 잠금 해제]
- 비서 레벨이 오르면 정보 접근 및 시스템 이용 권한이 확장됩니다.
[의뢰소 접근 권한 활성화]
- 공식/비공식 임무 수락이 가능해집니다.
[노에틱 마켓 접근 권한 활성화]
- 보유한 시길(σ)로 다양한 상점과 거래가 가능합니다. 비서 레벨에 따라 구매 가능 품목/수량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공명 증폭 단계(RAS)²⁰ 확인 기능 활성화]
- 크로노 딥스의 공명 증폭 단계(RAS)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계가 높을수록 위험도가 높아집니다.
『 ²⁰ : 공명 증폭 단계(Resonance Amplification Stage, RAS) - 좌표 공간의 정보적 안정성, 출현 이볼, 환경 위험 등을 종합하여 분류한 위험도 등급. RAS가 높을수록 위험하며, 주로 공식 보고서 등에 사용된다. 』
[노에틱 인벤토리 활성화]
- 보관함과 크로노 딥스에서 획득한 모든 물건을 전송할 수 있습니다. 비서 레벨에 따라 전송 용량/횟수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노에틱 스트리밍 기능 활성화]
- 크로노 딥스에 다이브 시 자동으로 녹화되어 개인 채널에 송출 가능합니다. 스트리밍 중 시청자 후원(시길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능을 활성화하려면 '네'라고 답하십시오.
“모든 등록을 마쳤습니다.”
“개인 비서 레벨은 조율력과 공명 지수에 비례하여 상승하니 참고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노에틱 스트리밍 활성화 완료]
“어제의 다이브 기록도 갱신했으니, 상태 창을 참고하세요.”
제로는 자신의 프로파일을 열었다.
- 제로
- 공명자 : 2 (+1)
- 시길 : 300σ (+300σ)
- 조율력 : 110 (+80)
- RQ : 8 (+8)
- TRQ : 124 (+24)
전보다 RQ가 8점이나 올랐다. TRQ은 제로, 세리아, 미미의 활동으로 인한 팀 기여 점수가 합산되어 반영되었다.
제로는 눈앞에 떠 있는 모든 창을 닫고, 앉아 있는 세리아에게 다가갔다.
“뭐가 엄청 많이 해제됐네.”
“이제야 눈높이가 좀 맞겠네. 그건 그렇고 이번에 IKH 공식 의뢰를 수행해야 해. 증폭 단계도 낮은데, RQ보상이 높아서 괜찮은 거 같아. 선착순이니까 바로 다이브 베이로 가자.”
세리아가 신청한 의뢰를 제로와 미미에게도 공유했다.
- IKH(수사대) 공식 임무 (ID: 6427)
- 증폭 : 1단계²¹
- 예상 RQ 보상 : 30
- 목표 : 지정 구역 내 이볼 개체 처리 및 환경 데이터 샘플(물 1L) 회수.
- 좌표 : 7223, 3966
『 ²¹ : RAS-1 (공명 증폭 단계 - 정적) - 가장 안정적인 단계. 미미한 글리치 외 특이사항이 거의 없다. 이볼 출현 가능성 매우 낮고, 기초 훈련 및 안전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
고양이처럼 몸을 뒤집고 공중에 발길질하는 미미를 발견하고, 세리아는 냉큼 다이브 베이로 데려갔다.
다이브 베이에는 여전히 많은 인원이 분포되어 있었다.
비어 있는 공명기(넥서스 다이브 체어)로 이동하는 도중 세리아가 제로에게 말을 건넸다.
“근데 너 무기는 하나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응. 뭔가 있어야 할 거 같아.”
미미는 제로의 바지 주머니에 있는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제로는 주머니 안에 있는 푸른색 장갑을 꺼내 들었다.
“이게 무기인가?”
“장갑 따위가 무슨 무기야.”
당당하게 말을 내뱉은 세리아도, 의아한지 푸른색 장갑을 이리저리 훑어봤다.
어딜 봐도 무기 같아 보이진 않았다. 제로가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일단 이거라도 착용해야겠다. 미미는 무기가 뭐야?”
미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근육을 과시했다. 그의 무기는 근육이었다.
세리아는 푸른색으로 빛나는 빈 공명기에 들어갔다.
제로는 공명기 문이 닫히기 전에 세리아에게 다가갔다.
“세리아.”
“시간 없어. 빨리 말해.”
“간호해줘서 고마워.”
세리아는 공명기의 문을 닫으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미미가 그들을 보고 흐뭇해하며 공명기에 들어갔다.
제로는 공명기에 편안히 기대자 문이 닫혔다.
“다이브.”
2022년 6월 12일 중국
구이린 미지의 동굴
시간 : 13시 50분
상쾌하고 말끔한 공기가 제로의 코로 흘러들어왔다.
안개가 자욱하게 덮인 주변에는 산과 나무가 둘러싸여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세리아와 미미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제로와 일행들 앞에는, 커다란 입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굴이다.”
그들이 커다란 동굴 입구를 들어가려는 순간, 뒤를 돌아보니 공간들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뭐… 뭐야?”
일그러진 공간에 보이지 않는 실루엣이 움직였다.
세리아와 미미도 뒤를 돌아봤다.
지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