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자~! 신규 팀 편성 첫 번째 팀을 공개하겠습니다!”
커다란 홀로그램의 목록들이 바뀌었다.
제코(루키) 중 1명인 ‘카렌’이 호명됐다.
뒤이어 2명이 호명됐고 3명이 한 팀이 됐다. 대부분 1팀당 편성된 인원은 2명~4명 사이였다.
통상적인 순서들이 지나며 다섯 번째 팀이 공개됐을 때, 기대 인원 중 1명인 ‘로드로트’가 지명됐고, 팀은 그를 포함 2명이었다.
마지막으로 7번째 차례가 돌아왔다.
“일곱 번째 팀을 공개합니다! 제로, 세리아, 미미 입니다!”
박수 소리가 들렸고, 저 멀리 세리아의 팀원들이 그녀를 응원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함박웃음을 짓고 대강당의 인원들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앞으로 피곤한 게 눈에 보인다.. 너 같은 신입이랑 팀이라니..”
제로는 속으로 ‘내가 더 피곤할 거 같은데’라며 읊조렸다.
일곱 번째 순서까지 모두 마치고, 팀 선별은 그렇게 마무리가 됐다. 사람들은 식사 시간이 되어, 제 나름대로 자리를 찾아 채워갔다. 제로는 접시에 맛있는 음식들을 가져와 자리에 앉았다.
세리아는 그 전 팀 인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이가 굉장히 좋은지 다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제로가 피자 한 조각을 입에 넣었을 때,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미미 인사해. 얘는 제로. 나는 로이원더 디크 세리아. 줄여서 세리아라고 부르면 돼.”
세리아는 미미를 옆에 앉혔다.
제로는 두 명의 여성과 팀이라는 게 나쁘지 않았다.
근데, 그에게 인사하는 미미는 여자치고는 덩치가 커 보였다. 키는 190cm는 족히 넘었고, 터질듯한 근육은 그가 입은 반소매를 찢고 나올 거 같았다.
남자였다.
“이름이 미미…. 라고?”
미미는 고개를 끄덕이곤, 작은 포크로 앙증맞게 음식을 먹었다.
제로는 덩치 큰 미미를 한참 바라봤다. 덩치는 산만 한 게 음식을 조금씩 먹는 게 신기해 보였다.
다이어트하는 건가?
그렇게 다 같이 밥을 먹는 중, 세리아가 운을 뗐다.
“얘들아, 우리 팀장을 정해야 해. 나는 첫 팀 빼고 팀장밖에 안 해봤어.”
제로는 피클 하나를 집으며 말했다.
“난 여기가 처음이라 잘 모르니까 너희 둘 중 한 명이 해”
“그러려고 했어. 미미 너 생각은 어때?”
미미는 말없이 손짓으로 세리아를 가리켰다.
“또 내가 하라고? 팀장을? 하.. 귀찮지만 하는 수 없지.. 너희가 간절히 원하니까 팀장은 내가 할게.”
제로는 속으로 말한다는 걸 깜박하고 입 밖으로 내뱉었다.
“간절히 원한 적은 없는데”
“뭐?!”
세리아는 아까와 같은 곳에 꿀밤을 때렸다. 이마는 다시 빨갛게 부어올랐다.
한 대 더 맞았다간 이젠 피가 나올 듯했다. 미미가 그들을 보고 활짝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무기고에 도착했다. 무기고 입구는 B2에 있었다.
세리아는 제로에게 키퍼가 쓰는 장비가 없어, 무기고에서 보급받아야 한다며 데려왔다.
무기고의 거대한 가벽은 순백의 대리석이 커다란 로비를 모두 메꿨다. 3m쯤 돼 보이는 두 개의 기둥은 투명한 나노결정 소재로 만들어져 내부에 뽐내는 푸른빛, 금빛이 소용돌이치는 것이 그대로 나타났다. 이 기둥을 통과하면 생체 정보를 무형의 빛으로 스캔한다.
엘리베이터는 반투명한 합성 옥으로 제작되어 내부에서 은은한 빛이 퍼져 나왔다.
두 개의 기둥을 지나 스캔을을 마친 그들은 비교적 작은 키의 안경 낀 무기 담당자에게 다가갔다.
“이름이?”
“제로입니다.”
무기 담당자는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제로’라고 적힌 열쇠를 쥐여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면 7-777로 가봐.”
“네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탄 그들은 층수를 누를 버튼을 찾고 있었다.1면~4면면 버튼이 4개가 전부였다. 1면을 누르자 철컹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방향이 오른쪽으로 바뀌며 엘리베이터와 출입문이 동시에 열렸다.
앞은 일렬로 수많은 서랍형 보관함들이 가지런히 열을 이뤘다.
제로의 보관함 앞에 나란히 섰다. 흥분한 세리아는 7-777을 가리켰다.
“7-777여기 있다! 빨리 열어봐!”
서랍을 열었을 때, 쪽지 한 개와 투박한 스테인리스로 덮인 투명한 렌즈와 똑같이 생긴 노에틱 바이저¹⁴, 시계처럼 생긴 크로노 워치¹⁵, 손톱만한 크기의 스티커로 되어 있는 시냅스 중계 노드¹⁶, 푸른색 장갑이 오른손 한 짝만 들어있었다.
『 ¹⁴ : 노에틱 바이저, Noetic Visor - 해석 렌즈. 단순한 정보 디스플레이가 아니라, 키퍼의 시신경 및 뇌의 시각 피질과 직접 연결되어 좌표 공간의 복잡한 데이터 스트림, 에너지 흐름, 보이지 않고 식별되지 않는 정보 등을 인지 가능한 감각 정보로 '번역'하고 증강 시켜주는 신경 인터페이스 렌즈 시스템이다. 보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게' 만드는 장치.
¹⁵ 크로노 워치 Chronono-Gauge Bracer - 공식 명칭은 크로노 게이지 브레이서. 시공간 안정성 측정기다. 광범위한 환경 센서(날씨, 온도, 방사선, 에너지 밀도, 공간 곡률 변동)와 착용자의 생체 신호를 지속적으로 측정하는 피드백 센서.
¹⁶ : 시냅스 중계 노드, Synaptic Relay Node - 신경망 커뮤니케이터 허브. 키퍼의 신경계와 직접 연결되는 양방향 정보 교환 허브다. 노에틱 바이저, 크로노 게이지 브레이서, 팀 네트워크, 그리고 전담 AI 어시스턴트까지 모든 네트워크를 키퍼의 의식과 매끄럽게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
제로는 가장 먼저 쪽지부터 읽었다.
「 역경과 고난은 성장의 열쇠다. 스스로에게 잡아먹히지 말아라. 장갑은 내 오랜 벗이 남기고 간 선물이니 소중히 다뤄라. 그럼 20,000 -세젤멋 프리머 아벨- 」
마지막 인사말에 어이가 없는지, 셋 다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축 가라앉은 공기를 세리아의 목소리가 깨고 나왔다.
“노에틱 바이저부터 껴. 그리고 이 작은 스티커를 귀에 붙이면 돼. 어서 해봐”
“낄 줄 몰라”
“이런 것도 내가 해줘야 하니?”
세리아가 케이스를 열자 노에틱 바이저가 스스로 떠오르면서 제로의 눈앞으로 이동했다.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노에틱 바이저는 빛을 뿜으며 제로의 안구를 재빠르게 찾아다녔다. 제로의 눈을 찾은 렌즈는, 안구에 빛을 쏘아대며 빠른 속도로 눈에 안착했다.
상당히 놀랐지만, 장착되는 느낌이 부드럽고 촉촉해서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개미만 한 스티커는 세리아가 오른쪽 귓속에 붙여줬다. 그녀에겐 산뜻한 꽃냄새가 났다.
푸른색 장갑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을 때, 귀에서 소리가 났다.
[띠딕 -! ]
[인식 완료]
AI 여성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더니, 눈 앞에 펼쳐지는 홀로그램 화면에 로딩 창이 띄워졌다.
그는 어안이 벙벙한 채 화면을 바라만 봤다.
세리아는 멍청한 표정을 짓는 제로가 귀여웠는지 피식했다.
[모든 동기화 완료]
[DNA 수집 완료]
[네이밍 완료]
[정보라고 5번 말씀해 주세요]
“정보, 정보, 정보, 정보, 정보”
[목소리 설정 완료]
[크로노 게이저 브레이서 ON]
[안녕하세요! 키퍼 제로. 전 당신의 비서 ‘버드’라고 합니다.]
AI의 자연스러운 목소리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았다.
“반가워 버드.”
[반갑습니다. 상대방의 정보를 보려면 정보라고 말씀해 주시면 되고, 티어라고 말하면 각 티어 순위를 확인할 수 있고, 점수라고 얘기하면 RQ(개인 공명 지수) 및 TRQ(팀 공명 지수) 집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든 정보 검색과 누군가와 통신을 원하시면 제게말씀해 주시면면 됩니다. 홀로그램 창에 실시간 상태 창을 띄워드렸습니다.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저를 불러주세요]
오른쪽 상단엔 상태 창이 나타났다.
- 제로
- 공명자(Resonants / 共鳴者 - 팬) : 0명
- 시길(Sigil / 시길 - 공식 화폐 단위) : 0σ
- DE(다이브 내구력 / Dive Endurance / DE - 체력) : 92%
- 조율력(Attunement Power / AP - 전투력) : 30
- TRQ(Team Resonance Quotient, 팀 공명 지수) : 100
- RQ(Resonance Quotient, 개인 공명 지수) : 0
[정보]
[티어]
[점수]
[지도]
[연락처]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 창을 훑어보곤, 세리아와 미미의 정보를 열어봤다.
그들의 눈을 인식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 세리아
- 공명자 : 93명
- DE : 100%
- 조율력 : 103
- TRQ : 100
- RQ : 50
- 미미
- 공명자 : 5명
- DE : 100%
- 조율력 : 205
- TRQ : 100
- RQ : 100
“와.. 이거 엄청난데?”
홀로그램을 보며 감탄하고 있는 제로는 문득 1위의 RQ가 궁금했다. 1위가 목표인 그는, 1위 조건을 알아야만 했다.
[열람 불가]
“다시”
[열람 불가]
[열람 불가]
“젠장!”
세리아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뭐야 왜 그래?”
“파라곤(키퍼 통합 TOP 100위) 1위 점수가 안 보여”
“멍청아. 이건 눈앞에 있는 사람들만 인식한다고. 인식되지 않은 인물은 함부로 볼 수 없어. 그리고 파라곤중 루미나리¹⁷들은 간접적으로도 보기가 힘든 존재들이야”
『 ¹⁷ : 루미나리, Luminaries - 키퍼의 5개 티어 중 가장 높은 루미나 티어에 속한 키퍼들을 지칭한다. RQ가 25만점 이상 되는 키퍼 중 극소수만 도달하는 경지. 』
미미는 구석에서 작은 벌레를 발견하고,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제로는 그녀에게 물어봤다.
“그럼 루미나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
“이번에 루미나리 중 1위 베니쉬 알지? RQ만 27만, 조율력이 55만이나 된다고 헛된 꿈은 안 꾸는 게 좋아. 아무리 타고나도 1위는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늘에 별.. 까짓거.. ”
제로의 눈이 이글거렸다.
눈빛에서 나오는 진심을 본 그녀는,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방금 미소가 제로에게 들킬까 봐, 비웃음으로 감췄다.
“풉.. 어디 루미나리 후보 실력 좀 봐볼까? 미미! 그만 괴롭히고 다이브 베이로 가자”
미미는 커다란 손에 올라간 벌레를 내려놓고 손을 흔들며 눈웃음을 짓고 인사했다.
그들은 다이버 베이로 향했다. 이곳은 모든 키퍼가 노에틱 다이브를 이용할 수 있도록 노에틱 공명기들이 설치된 공용 장소이다. 만달리움 뿐만 아니라 각 공공 기관마다 설치되어 있다.
제로는 크로딥을 통해 다이버 베이에 장치된 노에틱 공명기로 들어가면 크로딥에 노에틱 다이브 되는것 쯤은 알고 있었다. 세리아는 다이브 되는 기분이 더럽다고 했다.
다이브 베이에 도착하니, 오와 열을 맞춘 노에틱 공명기들이 있었고, 공명기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는 키퍼들이 상당수가 있었다.
“징글징글하네.. 여긴 항상 복잡해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없는 편이야.”
그들은, 빈 공명기를 찾아갔다.
유선형의 달걀 또는 고치 형태를 띤 1인용 공명기는 바닥에 단단히 고정된 베이스 위에 약간 기울어진 각도로 설치되어 있었다.
색상은 소속 기관에 따라 조금씩 달랐지만 대부분 차분한 무광 회색 또는 하얀색 바탕에 금속성 라인이 최소한으로 들어가 있었다.
정면엔 푸른 빛이 불규칙하게 이글거렸다.
세리아는 공명기를 툭툭 치며 미미와 제로를 번갈아 봤다.
“미미는 해봤겠고, 제로 너는 공명기에 들어가는 게 처음이야?”
“응. 처음 봤어.”
“후후! 완전 애기네. 특별히 내가 알려줄게. 우선, 공명기에 나타나는 푸른빛은 다이브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해주고, 붉은빛은 이용 중인 상태 즉 다이브된 상태. 고장 나거나 전원이 꺼진 건 불빛이 나지 않아. 공명기에 들어가서 최대한 편한 상태로 기대고 있으면 나머진 비서가 다 알아서 해줄 거야.”
제로는 그녀의 설명을 들을 때마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잘해준단 느낌을 받았다.
미미는 어느새 구석에 있는 조그마한 선인장과 교감하고 있었다.
선인장에 손을 갖다 대자 깜짝 놀라며 찔린 손가락을 꾹 누르고 있었다. 다행히 피는 안 났다.
세리아는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같은 크로딥에 다이브 되기 위해선, 공명기에 나온 좌표를 우리끼리 공유하면 돼. 좌표는 랜덤으로 잡혀.”
제로에겐 모두 생소한 말들이었다.
크로딥 가상 체험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내용이 세리아 입에선 자연스럽게 술술 나왔다. 제로는 그녀가 한 설명을 되새기며 까먹지 않으려고 머리로 복습했다.
그때, 다이브 베이 입구에선 수많은 인파가 몰려왔다. 다이브 베이는 단숨에 시끌벅적해졌다.
“베니쉬님이다!”
입구 쪽에서 3명의 남자가 들어왔고, 두 명은 비교적 작은 키에 장발을 묶은 빨간색 머리 1명. 파란색 머리 1명. 마치 쌍둥이처럼 같은 선글라스를 끼고 가슴을 당당히 내밀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중 유독 돋보이는 한 명은 아까 단상에서 봤던 루미나리 중 1위 베니쉬. 185cm 키에 쌍꺼풀 없는 매력적인 눈매. 갈색 가르마 펌은 그와 잘 어울렸고, 정장을 입은 그는 옷태가 아름다웠다.
그가 지나간 곳엔 따뜻한 커피 향이 은은하게 흘렀다.
다이브 베이에 있던 모두가 그에게 동경의 눈빛을 보냈고, 키퍼들은 곧이어 웅성거렸다.
“와.. 1위 기념으로 개인용 공명기가 아니라 다이브 베이에서 다이브 한다는 게 진짜였네.. 스트리밍도 한다며? 제대로 녹화해 놓아야겠다.”
“베니쉬님 너무 멋있어요!!”
“미쳤나 봐 어떻게 이렇게 가까이서… 진짜 미쳤다…”
근처에는 그를 향한 응원가를 부르는 여성 키퍼들도 보였고, 플래카드를 들며 반기는 여성 키퍼들도 보였다.
금방 소문이 난 다이브 베이엔 많은 키퍼가 붐볐다.
베니쉬는 손을 흔들며 근처의 키퍼들에게 인사했다. 정중하게 미소 지으며 그들에게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다.
어느 여성 키퍼는 그와 악수하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마주치면서 인사를 하며 제로의 일행들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겸비한 친절과 매너는 루미나리라는 칭호에 어울렸다. 외모는 인기를 배로 올려줬다. 인성, 실력, 외모, 명예 모든 걸 가진 그는 제로의 일행들 바로 앞까지 왔다.
제로는 홀로그램을 통해 그의 눈을 인식했다.
[정보]
- 칭호 : 파라곤
- 티어 : 루미나
- 이름 : 베니쉬
- 공명자 : 168,348,320
- DE : 100%
- 조율력 : 550,000
- RQ : 259,850
제로는 머릿속에 이 수치를 기억해 냈다.
자신이 바라는 루미나리가 눈앞에 있었다. 루미나리가 되기 위해선 베니쉬 보다 조율력과 RQ가 높아야 한다.
제로의 머릿속은 언젠간 녀석을 뛰어넘어 1위가 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베니쉬는 세리아 앞에 멈췄다. 세리아는 모른 척하며 고개를 돌렸다.
베니쉬는 부드러운 미소를 유지한 채, 허리를 숙여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주변 사람들이 들리지 않게 그녀에게 속삭였다.
목소리는 제로와 미미에게도 들렸다.
“세리아. 이제 잡다한 놈들 말고 강한 놈들이랑 다녀야지”
“충고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해”
세리아는 매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그렇게 몇 초간 눈빛을 주고받았다.
세리아는 어떻게 저렇게 재수 없는 웃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며 그를 끔찍하게 생각했다.
그는 세리아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귀 쪽으로 다가가 다시 한번 속삭였다.
“그놈들 죽은 게, 네 탓은 아니잖아. 안 그래?”
“…꺼져”
그녀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베니쉬는 순식간에 소름 돋을 정도로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그녀를 노려봤다.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그녀의 발을 짓눌렀다. 힘이 꽤 들어갔다.
발을 비틀자, 세리아는 신음했다.
“읍!!”
“아, 실수. 나중에 보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유일하게 제로와 미미는 그 장면을 목격했다.
제로는 세리아를 바라봤지만, 세리아는 고통을 참은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제로는 베니쉬를 보며 생각했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건 가면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미소를 지으며 키퍼들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추잡했다. 그렇게 자존감이 강한 그녀가 루미나리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세리아는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다. 발을 밟힌 고통보다는, 마음의 고통을 견디는 것 같았다.
세리아의 눈엔 쓸쓸하고 외로운 슬픔이 맺혀있었다. 미미와 제로가 보기 전에 등을 돌렸다.
이 상황. 더럽다. 제로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어이!”
제로는 매서운 눈으로 베니쉬를 노려봤다.
옆에 있던 세리아는 놀라, 제로를 쳐다봤다. 미미도 베니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베니쉬는 뒤를 돌아보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제로를 발견했다.
주변 소리는 조용해졌고, 제로에게 걸어가는 발걸음 소리만 커졌다.
어느덧 제로 앞에 온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열었다.
“혹시 절 부르신건가요?”
“사과해.”
양옆에 있던 무리는 제로를 비웃었고, 주변 사람들은 제로와 베니쉬를보고 웅성거렸다.
“저 자식 미친 거 아니야?”
“와.. 쳐 돌았네”
“갑자기 베니쉬님에게 왜 저러는 거지..?”
따뜻했던 커피 향도 얼어붙을 만큼, 주변 공기는 단숨에 차가워졌다.
베니쉬는 어이없는 듯 혀를 내두르며 다시 한번 물어봤다.
“뭐?”
“사과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