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이볼은 피로 물든 이빨을 드러내며,
세리아에게 쏜살같이 달려갔다.

퍽-!

세리아는 이볼의 공격을 피할 새도 없이 옆구리를 강타당하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갈비뼈 몇 대는 나간 것 같았다.
제로의 눈에선, 다시 한번 격렬한 푸른빛이 터져 나왔다.

쿠구궁-

동굴 천장 너머인지, 하늘에선 커다란 천둥소리가 이전보다 더 가깝게 연속으로 쳤다.
제로는, 땅을 짚고 힘겹게 일어났다.

다급한 버드의 목소리조차 제로에겐 들리지 않았다.
제로가 힘없이 걷는 것이 DE가 바닥났음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비틀거리는 몸. 온 신경을 이볼에게 집중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위태롭게 다가갔다.

“어딜…”

푸른 눈빛은 농도가 짙어졌다.

“어딜 감히…”

오른손 장갑 위로 푸른 플라즈마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너덜너덜한 몸은, 이젠 걷는것조차 한계였다.
제로에겐 자신의 몸 상태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촤라락!

제로의 찢긴 허벅지에선 다시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이볼에게 뜯긴 허벅지는, 더 이상 움직이면 안 된다고 신호를 보냈다.
지켜보던 마딘은 걸어가는 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떻게든 말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만두세요. 당장!”
팡-!

마딘은, 제로의 몸에 닿자마자 튕겨 나갔다. 제로의 몸 주위에 방어막이라도 씌워진 듯, 이상한 기운이 맴돌았다.

제로

  • DE : 7%
  • 조율력 : 290,310 (+177,000)
    [「위급 경고」 다이브 내구력(DE) 7%. 의식-신체 연결(Noetic Link) 유지 한계 임계. 주요 시스템 기능, 생존 유지 외 모두 중단합니다. 의식 파편화 또는 비가역적 NEC(노에틱 엔트로피 부패) 오염 확률 90% 초과. 모든 작전 행위를 즉시 중단하고 지정된 탈출 프로토콜을 따르십시오. 반복합니다, 이것은 최종 단계 이전 마지막 경고입니다.]

“윽…제로… 안 됩니다… 멈춰야 해요!”
“제로 그만! 너 그러다 진짜 죽는 수가 있어! 그만둬!”

버드의 경고와 마딘과 세리아의 외침에도 꿋꿋이 걸어갔다.
제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키퍼들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제로를 바라만 봐야 했다.

키킥!

이볼은 제로에게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처참하게 찢기는 제로의 모습을 상상한 것이다.
이볼은 바닥을 차고, 재빠르게 제로에게 달려갔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제로는 힘겹게 오른팔을 뻗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멈췄다.

“제로… 뭐 하려는 거야? 피해!”

제로는 씩 웃었다.
세리아는 소리를 지르며 제로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이볼은 이미 제로의 눈앞까지 와있었다.
그리고 이볼은, 제로가 뻗은 오른손을 낚아채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씹고, 또 씹었다. 장갑이 씌워진 팔을 탐욕스럽게 갉아 먹었다.
제로는 미소를 잃지 않으며, 아랑곳하지 않는 듯 기묘한 미소를 띤 채 서 있었다.
이볼이 제로에게 주의를 뺏겨 다른 키퍼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전략인 듯 보였다.
세리아가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작은 칼을 꺼내 이볼을 공격했다.

“죽어 이 괴물아!”
키킥!

이볼은, 뜯어먹는 것을 멈추고 세리아를 노려봤다. 이볼의 입가에서는 제로의 피가 뚝뚝 흘렀다.
세리아는 이볼의 눈빛에 공포가 도사렸다. 온몸에는 두려움이 가득 감쌌다.
이볼이 세리아에게 가려던 그때, 제로가 이볼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안았다.
그리고 이볼은 제로의 어깨를 씹었다.
제로의 몸에선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그만… 제발 그만… 이제 그만해 제로…”

세리아는 팔과 허벅지에서 떨어지는 피들을 바라보며 눈물이 핑 돌았다.
웃음을 잃지 않고, 꿋꿋이 서있는 제로의 모습은 곧 들이닥칠 죽음을 그대로 맞이하려는 것 같았다.
세리아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여 제발..! 막아야돼 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다짐했잖아..’

몸은 옛날 일을 기억하듯, 더욱 움직여지지 않았다. 공포로 싸인 몸은 떨기만 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눈물이 펑펑 흘렀다.
쏟아지는 눈물과 가쁜 숨. 떨리는 몸은 공포와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떨치기 위한 안감힘이었다.
제로는, 온 힘을 이볼을 감싸안는 것에 쏟아부었다. 온몸이 찢어지고, 피를 흘려대도 제로는 그렇게 해야 했다.
자신의 품을 떠나가면, 이볼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공격할 것이고, 그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데려갈 것이다.
누군가가 죽을 거면, 자신이 희생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 괴물 새끼야! 으아아아! 으아아!!”

세리아는 주변의 흙을 던지고, 작은 돌을 던져봐도 이볼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로를 뜯어먹고 있었다.

제로

  • DE : 2%
    [!!! 최종 임계 경고 !!! 다이브 내구력(DE) 5% 미만! 의식 연결(Noetic Link) 완전성 치명적 손상! 유지 불가능! 외부 고에너지 간섭 패턴 감지! 귀환 경로 차단! 좌표 이탈 불가! 생명 유지 시스템 과부하! 기능 저하 임박! 경고! 즉각적인 의식 소실 또는 존재 정보 소멸 확률 99% 이상! 통신 채널 불안정! 신호 유지 한계 초과! 제로! 제로, 응답하십시오! 제로!]

슈슉!
펑!


5년전 구이린 미지의 동굴
에메랄드 군집 앞

“찾았다! 와 엄청나잖아..”

민준이 감탄하는 사이, 하나는 다시 한번 임무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 IKH(수사대) 공식 임무 (ID: 6427)
  • 증폭 : 알 수 없음.
  • 예상 RQ 보상 : 66
  • 목표 : 공명 에메랄드 광맥의 기초 데이터 수집 및 안전한 샘플 수집.
  • 좌표 : 7223, 3966

기초적인 에메랄드 광맥의 수집이라면, 신입 키퍼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임무는 희귀한 광물이 감지되지만, 위험도가 높은 초기 탐사이기에 실력이 좋은 민준과 하나가 한팀으로 배정된 것이다.
반짝이는 푸른빛을 확인해보니 임무에서 주어진 에메랄드가 확실했다.
민준이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하나야 우리 이거 모두 가져가고 키퍼는 때려칠까?”
“그랬으면 좋겠네요~”
우우우웅 ㅡ !

민준이 에메랄드에 손을 갖다 대자, 낮은 공명음이 동굴 전체를 뒤흔들었다.
에메랄드 군집 전체가 일제히 격렬한 푸른 섬광을 터뜨렸다가, 암흑처럼 빛을 빨아들였다가, 다시 불규칙하게 맥동하기 시작했다.
민준은 옆에 있던 하나를 등 뒤로 빠르게 잡아당겼다.

“뭔가 이상해 아무것도 만지지 마”
“?!”
찌이이이이잉 ㅡ !

이번에는 고막을 찢는 듯한 고주파음과 함께 동굴 전체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벽면의 작은 에메랄드들이 공명하며 파르르 떨었고, 천장에서는 석회암 가루가 비 오듯 쏟아졌다.
에메랄드 군집의 맥동은 점점 더 빠르고 강렬해졌다.

퍼어어어엉 ㅡ !

에메랄드가 폭발하면서 눈이 멀 듯한 푸른 빛과 함께 차갑고 비릿한 푸른색 연기를 뿜어냈다.
강력한 에너지 충격파가 하나를 벽으로 밀쳐냈다.
연기는 순식간에 동굴을 가득 메웠다.
숨을 쉴 때마다 폐가 얼어붙는 듯한 냉기가 느껴졌다.
기침이 멈추지 않았고, 눈물과 연기 때문에 시야는 완전히 암전되었다.

“민준! 송민준!! 어디 있어! 대답해!!”

하나가 필사적으로 외치며 손을 더듬었지만, 잡히는 것은 차가운 돌벽뿐이었다.
민준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잠시 연기가 옅어진 틈으로 아주 약하게 푸른빛을 뿜어내는 곳을 쳐다보니, 그 앞에 민준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러났다.

“콜록! 거기서 뭐 하는 거야?!”

하나의 대답에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민준의 얼굴이 연기에 걷히며 서서히 드러났다.
민준의 표정은 경외감인지, 공포인지, 아니면 그 너머의 황홀경인지 분간할 수 없는 기묘한 모습이었다.

“하나야.. 이건.. 그들의 목소리가.. 이거는.. 이게 키퍼를.. 아니.. 인류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하나가 경악하는 사이, 푸른 연기가 실처럼 그의 귀와 코, 입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몸 주변으로 푸른 에너지 스파크가 튀었다.

“안돼! 무슨 소리야! 정신 좀 차려봐!!”
펑 ㅡ !

두 번째 폭발은 이전보다 훨씬 더 격렬했다.
이번에는 에메랄드 군집 전체가 공명하며 일으킨 듯한 거대한 에너지 파동이 동굴 전체를 휩쓸었다.
하나는 폭풍에 휩쓸리는 나뭇잎처럼 내동댕이쳐졌다.
정신을 잃기 직전, 그녀는 필사적으로 IKH 본부에 구조 신호를 보냈다.

[네 안녕하세요 IKH 본부..]
[여기는… 콜록! IKH 3에코윙… 김.. 콜록! 김하나입니다 콜록! 에너지 폭주.. 긴급지원.. 콜록!]
지지직.. 치지직..

통신은 노이즈 속으로 사라졌다.
의식이 희미해지는 하나에게 마지막으로 들린 것은, 푸른 연기 속에서 터져 나오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고통과 황홀함과 분노가 뒤섞인 듯한 민준의 끔찍한 절규였다.

“으아아아아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세리아와 마딘, 쓰러져있던 미미와 쥴록의 눈동자가 커졌다.
제로와 이볼이 사라지고, 이볼은 어느새 동굴 벽으로 날아가 크게 부딪혀 벽에 꽂혀있었다.
세리아는 제로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시선을 옮기니, IKH 유니폼을 입은 한 명이 제로를 껴안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그 옆에 서 있었다.

김하나

  • IKH 본부 에코윙 9팀 헤페
  • IKH 정보는 열람할 수 없습니다.

안데르손

  • IKH 본부 에코윙 9팀 프라이펙투스
  • IKH 정보는 열람할 수 없습니다.

“IKH 본부…?! 여긴 최소 파라곤급이 모인 곳이잖아… 여긴 왜 온 거지…?”
“그래도 다행입니다. 최악의 상황은 넘겼잖아요…”

세리아는, 마딘의 말에 안심했다.
프라이펙투스 안데르손은, 들고 있는 제로를 땅에 내려놓으며 제로를 유심히 살폈다.

“상처가 영… 남아있는 인원들은 소속 학교로, 이놈은 본부 의무대로 데려간다.”

헤페 김하나는, 동공이 흔들리며 날아간 이볼을 바라봤다.
안데르손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곧이어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들었나, 헤페?”

이볼이 벽에서 떨어져, 땅을 짚고 일어났다.
이볼의 모습을 보고 하나는 눈물을 흘렸다.
안데르손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헤페!”

안데르손의 외침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나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엔 온통 과거의 사건과 눈앞에 있는 이볼로 가득 찼다.

“왜… 도대체 왜…!”
“왜…? 헤페, 지금 프렉텔에게 반말하는 것이냐!”